'신비의 생활사' 현대과학도 못풀어

[토종 뱀장어]충주호와 대청호 등지에서는 댐 건설 이전에 올라와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토종 뱀장어들이 어부들에 의해 1년에 10마리가량 잡히고 있다. 이들은 최근 방류한 개체들 보다 크기가 훨씬 크다./자연닷컴 

'신비의 물고기'

양식과 수입이 보편화되면서 사계절 스태미나 음식으로 각광받는 뱀장어. 하지만 뱀장어를 즐겨먹는 미식가 중에서 뱀장어가 '인류가 풀지 못한 신비의 수수께끼를 지닌 물고기'란 사실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달나라를 갔다오고 화성탐사를 시작한 현대 과학이 아직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는 뱀장어의 비밀. 바로 그것은 뱀장어의 정확한 산란 시기와 산란 장소, 그곳의 환경, 산란 장면 등에 얽힌 궁금증이다. 다시 말해 뱀장어는 정확히 언제 산란하며, 산란하는 장소는 어딘지, 또 그곳의 환경은 어떻고 산란 동작은 어떤지 등에 관해 인류 역사 이래 각국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추적에 나섰지만 어느 누구도 속시원히 뱀장어의 산란 장면을 직접 보거나 산란 장소를 알아내진 못했다. 말 그대로 불가사의다. 

이러한 의문들과 관련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라곤 고작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쪽의 뱀장어, 즉 학명이 'Anguilla japonica(일명 자포니카·Japanese eel)'인 뱀장어는 동북아에서 약 3000㎞ 떨어진 마리아나 열도와 필리핀 북쪽 루손섬 사이 서태평양 심해에서 산란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북미·유럽산 뱀장어(Anguilla anguilla·일명 앙귈라, 왕눈이)는 대서양 서부 적도부근의 사르가소해 지역의 심해에서 산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과, '이들 장소의 환경이 16∼17도의 비교적 높은 수온과 염도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또한 '산란기는 매년 봄, 여름 또는 2∼6월 사이로 추정된다'는 것 정도이다.

물고기 연구 분야에서 두번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일본 과학자들조차 수십년째 추적하고 있지만 이들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은 얻지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뒤늦게 연구에 나선 우리나라보다도 못하다. 충남대 이택원 교수가 최근 일본학자들도 밝혀내지 못한 뱀장어 유생, 즉 렙토세파루스(Leptocephalus·이 교수는 이 유생의 모습이 대나무잎과 흡사하다 하여 '댓잎뱀장어'라 명명)의 생태를 상당 부분 밝혀냈으니 말이다.

 [베트남산 실뱀장어]베트남산 실뱀장어는 분류학상으로는 국내산과 같은 자포니카 종이나 자라면서 형태와 생태가 크게 달라져 국내 자연수계로 유입될 경우 생태적으로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자연닷컴

분류학적 의의

뱀장어목 뱀장어과의 민물고기로, 전 세계에 16종 3아종(총 19종)이 분포한다. 하지만 '수입 및 이식'과 관련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종은 앞서 말한 아시아산(극동산) '자포니카'와 북미·유럽산 '앙귈라'이다. 

국내서 보통 뱀장어라고 부르는 자포니카 종은 주로 한국,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분포하며 전장은 60∼100㎝, 생김새는 가늘고 긴 원통형을 하고 있다. 가슴지느러미 기조수는 15∼20, 척추골수는 112∼119개 정도. 

얼핏보면 비늘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매우 미세한 비늘(원린)이 있고 옆줄까지 뚜렷하다. 체색은 사는 곳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등쪽은 암갈색 내지 흑갈색, 배쪽은 은백색 또는 연한 황색이다.

하지만 같은 자포니카 종이라도 서식지역에 따라 형태 및 생태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특히 베트남산 자포니카는 머리가 흡사 코브라처럼 크고 등쪽 색깔이 대부분 누런 빛을 띠고 있어 국내산과 확연히 구분된다.

북미·유럽산인 앙귈라 종은 '왕눈이'란 별칭답게 눈이 크고 굵기에 비해 몸길이가 짧은 게 특징이다.

 

습성 및 생활사

거의 모든 민물수역에서 서식하며 새우, 게, 수서곤충, 어린 물고기 등 거의 모든 수중생물을 먹는 탐식성이다. 

수정란에서 부화한 유생(렙토세파루스)은 반투명의 대나무 잎 모양(댓잎뱀장어)이며, 이것이 자라 투명한 실뱀장어(glass eel, 일본명 시라스, 몸무게 0.15~0.18g)로 변태하며 이어 검둥뱀장어(일본명 구로고·댄비리, 0.2~2g) 과정을 거쳐 성어로 자란다.

 

수컷은 보통 3∼4년, 암컷은 4∼5년 정도 걸려서 어미로 자라지만 산란을 위한 이동은 대략 5~12년 사이에 한다. 산란 이동 시기 및 경로는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 사이 하천의 하구를 통해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산란지인 심해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산란한 어미는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만장에서의 양식은 바다에서 하구로 올라오는 자연산 실뱀장어를 포획해 이용하는데 지난 1998년에는 머리카락 같은 0.2g짜리 실뱀장어 한 마리 값이 1200원을 호가할 정도로 '금값'이었으나 최근 외국산 실뱀장어가 수입되면서 가격이 절반 이하로 하락했다. 

각국의 학자들이 댓잎뱀장어를 채집해 실뱀장어로 키우는 실험을 수없이 시도해 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일반적 인식 및 확산 경로

외국산 뱀장어의 수입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면서 뱀장어 역시 국내 생태계를 위협하는 소위 '요주의 어종'으로 자리잡고 있다. 방류 또는 방생이 시도 때도 없이 이뤄지다보니 토종 뱀장어를 중심으로 한 기존 생태계의 균형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같은 자포니카 종이라도 베트남산 뱀장어와 중국 남부지역산 뱀장어는 우리나라산 뱀장어와 형태와 생태가 크게 다른 데도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최근 들어 어린 새끼(치만(稚鰻)·양식용)와 성어(성만(成鰻)·식용)가 다량 수입돼 상당수는 이미 자연수계로 흘러들어 국내산 뱀장어와 함께 잡히고 있는 등 심각한 상태다.

 

[외국산 뱀장어]최근 금강과 한강 등 국내 거의 모든 하천에 뱀장어 방류사업이 실시되면서 '외국산'으로 의심되는 초대형 개체들이 심심찮게 잡히고 있다./자연닷컴



국내에 수입되는 중국산 뱀장어 중에는 또 국내산 뱀장어와 형태 및 생태가 아주 흡사한 종이 있는데 이 종 역시도 상당수가 이미 국내 자연수계로 유입돼 생태학적으로 많은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한쪽에선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주장하는 반면 다른 쪽에선 아무리 흡사한 종이라도 인위적 유입에 따른 생태적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북미·유럽산 앙귈라 역시 새끼와 성만의 수입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전국의 자연수계로 급속히 번져나가고 있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이들 외국산 뱀장어가 국내 자연수계로 다량 유입될 경우엔 국내 토종과의 먹이 및 서식지 경쟁을 통해 기존 생태계에 대한 침입자 역할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유전자 오염과 같은 씻지 못할 악영향까지 우려된다.

현재 국내에는 중국과 북한, 베트남을 비롯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부터 뱀장어 새끼와 성어가 수입되고 있는데, 2004년 3월 이후 월 약 400∼1000t가량 수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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