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자신의 생명유지와 종족보존을 위해 온갖 다양한 생존전략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식물의 '자손 퍼트리기 전략'은 실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고 신비롭다.
예를 들면 민들레, 씀바귀, 박주가리 같은 식물들은 자신의 씨에 가벼운 솜털(씨수염)을 달아 바람 타고 둥실둥실 멀리 퍼져나가고 소나무, 단풍나무, 가중나무 같은 것은 씨에 날개를 달아 멀리멀리 퍼져 나간다.
또 도깨비바늘과 도꼬마리 등은 갈고리가 달린 가시를 이용해 사람의 옷이나 짐승 털에 붙어 장거리 여행을 하고 산삼, 천남성, 오미자 등은 붉은 열매로 새를 유혹해 스스로 먹이가 됨으로써 산너머 강 건너까지 손쉽게 이동한다.
봉숭아 종류와 콩과 식물들은 용수철처럼 탄력성이 있는 씨 주머니를 터트려 종자를 멀리 날려보낸다.
이렇게 퍼져나간 씨들은 또 끈질긴 생명력으로 주변 여건이 새싹을 틔우기에 적당한 조건을 갖출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오랜 기간 자신의 발아력을 유지한다.
실례로 인도의 어느 늪지대서 발견된 연씨는 1천년이 지났는데도 새싹이 돋아났으며 루피너스 아르티쿠스(Lupinus articus)란 식물종자는 무려 1만년이 지난 후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싹을 틔워 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더욱이 이 식물은 지금의 동종 식물과는 형태학적으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학자들을 더욱 놀라게 했음)
식물의 씨는 또한 그것이 다 익어 땅에 떨어진 다음에도 일정 기간 동안 휴면기를 갖는다. 어린 새싹과 뿌리가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오기 위해서는 적당한 온도와 수분, 산소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모체(母體)에서 떨어져 나왔다해서 모든 씨앗이 금방 새싹을 틔우는 게 아니다.
어떤 것은 운이 좋아 별 어려움을 겪지 않고도 껍질이 물러져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반면 어떤 것은 몇 년이 지나도 적당한 조건을 만나지 못하고 딱딱한 껍질을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다.
하지만 식물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을 동원해 자신이 생산해 낸 씨앗으로 하여금 가능한 한 힘들이지 않고도 새싹을 틔울 수 있도록 '어미(?)'로서의 배려와 임무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 실례를 야생의 산삼에서 볼 수 있다.
산삼은 자신의 열매가 산새들의 눈에 잘 띄도록 붉고 탐스럽게 맺음으로써 그 것을 따먹은 새들의 이동거리까지 종자를 퍼트린다.
그러나 산삼의 속셈은 거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산새의 먹이가 되면 연한 육질 부분은 소화가 되지만 단단한 씨는 새의 뱃속을 통과하는 동안 모래주머니의 모래에 깎이고 위액에 들어있는 산(酸) 성분에 깎이어 새똥과 함께 배출되기 때문에 손쉽게 발아할 수 있는 조건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단한 겉껍질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비바람 속에서 풍화돼야만 싹틀 조건을 맞게 된다.
이러한 배려는 비단 산삼에게서만 있는 건 아니다.
알고 보면 이 땅의 모든 식물 하나 하나가 제 종자 제 씨앗을 위한 '숭고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비록 작디작은 씨 한 톨이지만 그 속에 내재된 생존전략과 생명현상은 그것을 알면 알수록 더 큰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된다.
씨 한 톨의 위대함과 신비로움.
이것이 바로 이 지구상의 식물 생태계를 움직이는 숭고한 힘이요 생존원리인 것이다.
오늘은 5월 8일 어버이날.
시절은 바야흐로 온갖 식물들이 '씨 한 톨'을 만들기 위해 꽃가루를 열심히 날리는 초여름이다.
예전 같으면 시골 아낙들이 송홧가루 받느라 온산을 누빌 때이지만 지금은 세태가 변해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비단 세태만 변한 게 아니다.
꽃가루보다 더 한 황사가 온 하늘을 뒤덮어 사람들을 잔뜩 긴장하게 만드는 그런 세상이 돼 버린 것이다.
전국의 초등학교가 어버이들을 위한 운동회 등 각종 행사를 여는 이 시기에, 하필 '황사 주의보'라니....
행여 황사와 함께 날아온 오염원들이 식물들의 꽃가루에 묻어 돌연변이를 낳는 씨앗을 만들지나 않을는지.
괜한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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