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사이에 두고 무릉리와 도원리 나란히 위치
 
가뭄 끝 장마로 하천·농경지 일시에 해갈 
 청천 뒤뜰숲 피서지로 각광 지역의 랜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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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화9경의 마지막 명소인 박대소에서 몸을 풀어헤친 강물이 갑자기 거센 몸부림을 친다. 하룻 밤새 몸집도 수십 배 늘고 물빛도 온통 황톳빛으로 변했다. 7호 태풍 ‘갈매기’가 몰고온 집중호우 때문이다.

 

지난 6월 중순 단 한 차례 비다운 비가 내렸을 뿐 예년에 없던 마른 장마로 겨울철부터 내내 바닥을 드러내던 달래강이 하늘의 조화(造化)로 금새 딴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이 자연의 힘이다.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어쩔 수 없던 긴 가뭄이 자연의 조화로 일시에 해결된 것이다. 해서 달래강 주변 사람들은 이제서야 맘을 놓게됐다.

 

‘큰물’이 지나가지 않아 다슬기와 물고기들이 씨 마를까 걱정하던 어부들도, 연일 타들어가던 농작물을 바라보며 “며칠새 해갈되지 않으면 알갱이가 영글지 않아 곡식 먹긴 다 글렀다”고 애간장 녹이던 농부들도, 숲속까지 메말라 올해도 버섯포자 생기긴 다글렀다고 지레 한숨짓던 송이버섯꾼들도 이젠 모두 두 다리 뻗고 잠자게 됐다. 아니 오히려 국지성 호우가 더 내린다는 예보에 장마 걱정까지 하게 됐으니 하룻밤새 인간의 마음까지 간사하게 만들어 놓았다.

 

소리까지 요란해진 강물을 따라 박대소 계곡을 나오니 청원군의 끝동네인 쇠바우와 마주친다. 이 마을 앞에 새로 건설된 삼인교 중간이 청원군과 괴산군의 경계다.

 

다리가 없던 시절 마을주민들은 불편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고 한다. 강 건너 괴산군쪽 마을인 삼인리 사람들이 청원군 지역에 있는 논밭으로 일을 하러 왔다가도 속리산쪽 하늘에 검은 구름만 비치기만 하면 부랴부랴 강을 건너야 했단다. 그렇지 않고 우물쭈물 일욕심을 더 냈다간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발이 묶여 물이 줄 때까지 마냥 생고생을 했단다. 속리산 지역이 워낙 비가 많은 다우지역이라 이 쪽의 ‘동네 날씨’ 갖고는 상류쪽 강우량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에 불어난 강물도 속리산 쪽의 영향이 크다는 주민들의 말을 듣고는 다리를 건너 괴산군 청천면 관내로 들어서니 왼쪽으로 한들보가 눈에 들어온다. 청천~용화간 도로가 지나는 강평교 다리 위에서 한들보를 바라보니 이제껏 봐온 다른 보와는 규모가 비교 안 될 만큼 커 보인다. 청천지역에서 가장 넓은 들판을 끼고 있어 한들보라고 했다는 데 그 유래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들보를 넘어선 강물은 또 다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 이름이 청천지역을 흐른다 해서 붙여진 ‘청천천’이다. 본래 청천면은 조금전 지나온 삼인교 중간 경계지점부터 시작되나 청천 사람들의 관습상 한들보 바로 아래부터를 청천천이라 부르고 그 위를 박대천이라 부르고 있다.

 

불어난 물에 한들보에서 떨어지는 강물이 장관을 이룬다. 넓이 100m가 넘는 보막이에서 동시에 떨어져 한바탕 굽이친 후 하얀 포말을 만들며 몸을 사리는 모습이 마치 수문을 닫았다 연 것처럼 일사분란한 게 아주 볼 만하다.

 

모처럼만의 ‘큰물’, 그리고 장관
 태풍 ‘갈매기’가 몰고온 집중호우로 물이 불자 한들보에서 떨어지는 강물이 장관을 이룬다. 넓이 100m가 넘는 보막이에서 동시에 떨어져 한바탕 굽이친 후 하얀 포말을 만들며 몸을 사리는 모습이 아주 볼 만하다.

한참 넋을 잃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데 지나가던 사람들도 합세해 연신 ‘폰카’를 눌러댄다. 모두들 근래 보기 드문 광경이란다.

 

한들보 아래 귀만리로 들어서는 다리는 벌써 물이 목까지 찬 채 물위에 떠 있다. 다릿발은 아예 물에 잠겨 보이질 않는다.

 

이 다리 바로 아래 오른쪽으로는 속리산 뒤쪽(경북 용화)에서 흘러내려오는 신월천이 합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강폭은 더 넓어지고 강물도 훨씬 많아졌다.

 

귀만리 앞 다리를 지나 한들(강평들)을 거친 강물은 청천면 소재지 인근으로 흘러들어 환경지킴이 공원 뒤 잠수교서 방향을 동북방향으로 약간 틀어 청천 뒤뜰숲(후평숲)을 스치며 질주한다. 환경지킴이 공원은 이 지역 주민들이 용화지역의 온천개발을 저지한 기념으로 세운 곳으로 달래강 수질과 자연환경을 지키려는 염원과 의지를 담고 있다.

 

청천 뒤뜰숲은 속리산 법주사 입구의 야영장숲(오리숲내 소나무숲)과 청원 미원의 금관숲과 더불어 ‘달래강 3대숲’이라 부를 만큼 명성이 자자한 청천지역의 명소다. 강가 옆으로 펼쳐진 모랫벌 위로 수십~수백년 된 참나무와 소나무, 느티나무들이 마치 하천가에 펼쳐놓은 파라솔처럼 즐비하게 서있는 모습은 이 지역을 찾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여름 휴가철이면 멋진 경관과 자연숲이 선사하는 시원한 바람, 강수욕, 여울낚시 등을 즐기기 위해 하루평균 수백~수천명이 찾아왔으나 국가 금융위기 이후 찾아온 장기적인 경기 침체 여파로 지금은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달래강과 청천 뒤뜰숲
 청천 뒤뜰숲은 속리산 법주사 입구의 야영장숲(오리숲내 소나무숲)과 청원 미원의 금관숲과 더불어 ‘달래강 3대숲’이라 부를 만큼 명성이 자자한 청천지역의 명소다.

청천 뒤뜰숲을 반바퀴 돌며 섬 아닌 섬을 만들어놓은 강물은 이내 방향을 다시 틀어 고성리 고연마을을 향해 줄달음 친다. 청천뒤뜰에서 고연마을까지는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닫지 않는 계곡형 하천으로서 바닥에는 커다란 바위가 수없이 깔려있어 쏘가리,뱀장어,대농갱이 같은 경제성 어종이 많이 서식하나 워낙 인적이 드물어 불법어로가 성행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찻길을 통해 고연마을로 접어드는데 천변에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누런 암소가 평화롭게 되새김을 하면서 낯선 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비가 갠 틈을 타 동네주민이 매놓은 것이다.

고향의 풍경
 청천 뒤뜰숲을 지나 계곡이 휘도는 고연마을로 접어드는데 천변에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누런 암소가 평화롭게 되새김을 하면서 낯선 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연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물머리를 튼 강물은 고성리 성암 못미쳐 도로변에 커다란 자연보를 형성해 놓은 후 다시 방향을 틀어 도원리를 향한다. 도원리 건너편 신도원은 청안 부흥쪽에서 흘러내리는 압항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이 일대의 금평·신도원·도원(원도원)리 하천변에는 최근 팬션과 민박집이 크게 늘어 이 지역의 새로운 수입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압항천이 청천천(달래강)으로 흘러드는 신도원리(중리) 합류지점에는 인근 무릉리에서 내려오는 조그만 실개천도 함께 합쳐지는데 그 물빛 만큼이나 동네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강 건너는 도원(원도원)이요, 합수머리가 있는 곳은 신도원, 실개천이 흘러내려오는 곳은 무릉이다. 이들 이름을 합쳐보면 ‘무릉도원’ 아닌가.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도원경처럼 끝없이 너른 땅과 기름진 논밭, 풍요로운 마을과 뽕나무, 대나무밭은 비록 없더라도 청천천과 인근 산들이 어우러진 이곳 산천경계가 결코 그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 지역 선인들의 혜안을 읽을 수 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무릉리 안쪽에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자연을 벗삼아 사는 한 남자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행방을 모른단다. 외지서 들어왔다는 그도 처음에는 이곳 지명을 듣고 나름대로의 ‘이상향’을 꿈꾸며 들어와 그렇게 살다 바람처럼 어디론가 또 다른 도원경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장마철 이색 낚시
 비가 내려 달래강에 큰물이 흘러가면 각 다리나 천변에는 상류로 이동하는 눈동자개,메기,뱀장어 등을 잡으려는 낚시꾼들이 모여들어 이색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용과 신선이 살던 옥화9경 곳곳에 펼쳐져”
선비들 즐겨 찾던 옥화대 옛 정취 솔~솔
‘죽은 하천’으로 변한 박대소 아쉬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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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신선이 살던 곳 옥화9경. 청주-보은간 19번 국도가 지나는 청원군 미원면 운암리 삼거리서 왼쪽으로 박대천(달래강)을 끼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이 지역 안내표지판의 대표적인 수식어다.


달래강 삼백리 물길 중 유독 이 지역서 용과 신선이 강조되고 있음은 이곳의 경치가 예부터 예사롭지 않았음을 전설로 말해준다. 국내 절경 치고 용과 신선 이야기를 품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2경인 용소에서 그 옛날 승천하다 지나가던 여인이 보는 바람에 중도에 떨어져 이무기됐다는 ‘슬픈 용’의 전설을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3경인 천경대를 향하는데 물가에서 청소년 20여명이 기타 치며 흥겹게 놀고 있다. 1970~80년대나 볼 수 있었던 낯익은 광경이어서 눈길이 절로 머문다.

 

예년에 없던 마른장마가 이어지면서 때 이르게 찾아온 불볕더위로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도는 데 그늘 하나 없이 달랑 돗자리 몇 개 깔고 앉아 노는 모습이 한편으론 안쓰럽게도 보였지만 자연과 어울어진 그들에게서 멋진 정열을 느낄 수 있었다.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 마을 안쪽 강변에 있는 천경대는 수직으로 이뤄진 절벽과 함께 달빛이 맑은 물에 투영돼 마치 하늘을 비추는 거울같다 하여  이름지어졌다고 하나 지금은 절벽앞 하천 수심이 얕아져 예전 풍취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옥화3경 ‘천경대’

 

마른장마로 장마철 때아닌 가뭄 현상이 이어지면서 달래강도 예년에 없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7월 둘째 주말을 맞아 강가를 찾은 피서객들이 강물엔 들어가지 않고 물가서 놀고 있다.


천경대서 하류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4경인 옥화대가 지척에 있다. 옥화대는 하천변 들판에 절벽과 고목이 어울어진 동산이 마치 옥처럼 떨어져 있다 해서 이름지어졌는데 이곳을 즐겨찾던 옛 선비들이 옥화9경 중 가장 대표적인 절경으로 꼽았던 곳이다. 특히 이곳은 조선시대 선비인 석애 이규소 등 유학자들이 후학을 양성키 위해 추월정과 만경정, 세심정 등 세 정자를 지어 후학을 양성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옥화대 정상부의 세심정에 올라 앉으니 주변 고목이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제멋대로 휘어진 아름드리 소나무와 느티나무, 참나무가 옛 향기 절로 피어나는 정자와 어울어진 게 어찌나 멋드러진 지 금방이라도 옛날 선비들의 시 읊던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한참을 그렇게 옛 향기에 취해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꾀꼬리가 날카로운 경계음으로 제 존재를 알린다. 유난히 부산을 떠는 모습을 보니 근처 어딘가에 둥지가 있는 모양이다. 빨리 자기들 행동권역에서 벗어나라는 경고인지라 더 지체할 수가 없어 발길을 막 돌리려는데 이번엔 옆에 있던 소나무 둥치 구멍서 느닷없이 솔부엉이가 튀어나온다. 잠을 자다가 이웃사촌 꾀꼬리 부부가 하도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 듯 하다.

 

생태계가 아직은 살아있음이다. 생물들이 살아갈 적당한 환경과 공간만 보전된다면 그들 역시 언제까지라도 우리들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옥화대(옥화4경)의 세심정


반가운 손님을 뒤로 하고 발길은 다시 5경인 금봉을 향한다. 이곳은 이미 지난 3~4월에 세 차례 답사했던 곳으로 우거진 숲과 급경사, 높은 절벽 때문에 사진촬영이 결코 쉽지 않은 곳이다. 지난번 마지막 촬영 때 70~80도 절벽 위의 참나무에 간신히 올라앉아 수백 미터 아래로 굽이치는 물길을 촬영하다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으로 카메라를 떨어뜨릴 뻔 했던 생각에 아직도 등줄기가 찌릿하다.    

 

비단결 같은 봉우리란 뜻의 금봉(錦峰)은 달래강서 보기 드물게 물길이 오메가(Ω) 형으로 굽이치는 곳으로 커다란 바위 동산을 하천물이 한바탕 휘돌아 나가는 하천가에 깨끗하고 고운 백사장이 형성돼 있어 많은 이들이 찾던 명소다.

 

길 입구가 있는 미원면 월룡리서 금봉을 바라보고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 한 순간 2m 가량의 좁은 능선에서 동시에 양쪽 강물이 보이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오메가 형태의 목 부분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이뤄진 이곳 목 부분을 아래 위 동시에 한 장의 사진으로 나타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써봤지만 워낙 절벽이 높아 포기하고 말았다.

 

과거 언젠가는 서울의 모 기업서 이곳 목부분에 터널을 뚫어 거기서 생기는 낙차를 이용, 소형 발전소를 건설하려 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확인할 길이 없다. 금강 유역에서는 이미 오래 전 전북 무주군 무주읍 방우리에 있는 오메가 형태의 물줄기에 터널을 뚫어 소수력발전소를 건설한 바 있다.

 금봉(옥화5경)에서 바라본 박대천(달래강)

 비단결 같은 봉우리란 뜻을 지닌 금봉(錦峰)은 달래강서 보기 드물게 물길이 오메가(Ω) 형으로 굽이치는 곳으로 커다란 바위 동산을 하천물이 한바탕 휘돌아 나가는 하천가에 고운 백사장이 형성돼 있어 많은 이들이 찾던 명소다


금봉을 돌면서 호쾌하게 몸부림 친 물줄기는 깊은 산골짜기를 빠져나오면서 곧바로 옥화6경인 금관숲(미원면 금관리)과 만난다. 금관숲은 청주 등 인근지역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야영장 형태의 자연숲이다. 약 7,000㎡의 넓은 숲에 20m가 넘는 굴참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한여름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금관숲에서 다시 미원면 계원리를 향해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 산자락으로 높이 6~10m, 넓이 약 50m 가량 되는 절벽이 펼쳐져 있는데 그 앞쪽에 7경인 가마소뿔이 있다. 이 가마소뿔은 독특한 이름 만큼이나 애잔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먼 옛날 막 혼례를 치른 신랑과 신부가 이곳을 지나는데 신부의 가마가 흔들려 그만 물에 빠져 죽었는데 이를 애통해 하던 신랑도 함께 뛰어 들어 죽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어 나타나는 8경인 신선봉은 미원면 계원리서 바라보이는 강건너 신선봉의 경치를 말한다. 해발 630m인 이 봉우리는 먼 옛날 신선이 놀았다 하여 신선봉으로 불려지고 있다.

 

마지막 옥화9경인 박대소는 이 지역(청원 미원)의 달래강 이름인 박대천을 낳은 곳으로, 계원리서 쇠바우(어암1리) 쪽을 향해 물길을 따라내려 가다보면 깊은 계곡 안에 커다란 소(沼)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박대소다. 푸른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깊은 못이 있어 박대소라 일컬어지는데 이곳 역시 하천 바닥이 많이 메워져 예전 느낌은 나지 않는다. 이 소는 특히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에 있어 불법어로꾼들이 자주 찾는 바람에 오래전부터 물고기와 다슬기가 자취를 감춘 ‘죽은 하천’으로 알려져 있다.

박대천 이름 낳은 박대소
옥화9경의 마지막 명소인 박대소는 청원 미원 지역의 달래강 이름인 박대천을 낳은 곳으로, 푸른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깊은 못이 있어 박대소라 일컬어지는데 이곳 역시 하천바닥이 많이 메워져 예전 느낌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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